-
오슬로 협정과 무장투쟁 역사세계 지리, 세계 역사, 분쟁 원인 2022. 6. 18. 08:35
오슬로 협정과 무장투쟁 역사
오슬로 협정과 무장투쟁 역사 오슬로 협정의 중심은 무장 투쟁을 중지하겠다는 거예요. ”자 우리 아랍인들은 무장투쟁을 하지 않겠어 “ 대신 이스라엘이 뭔가 주는 게 있어야겠죠. 이스라엘은 ”우리 가살 수 있는 땅을 단계적으로 돌려줘 “ ”너네가 전쟁해서 다 하나씩 하나씩 가져갔으니까 다시 하나씩 하나씩 돌려줘 “ 자, 이게 이 협정의 중심이다 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평화의 공존과 땅의 교환, 평화를 갖는 대신 땅을 좀 내놓으면 우리가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이 오슬로 협정의 키라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오슬로 협정 덕분에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의 자치정부를 다음 해에 출범시켜요. 자치정부를 출범시키고, 그리고 가자지구와 웨스트 뱅크의 예리코라고 하는 도시를 중심으로 해서 자치를 하기 시작합니다. 서안지구가 웨스트 뱅크 전부다 자치를 하는 지역은 아니고요. 그중에서 일부 지역을 자치를 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그다음 해야 두 번째 오슬로 협정이 다시 완료가 되면서, 자치 지역이 조금씩 조금씩 넓어지는 이런 성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오슬로 협정이 맺어지고, 아랍인들이 자치할 수 있는 지역이 넓어지고, 참 행복하게 모두 다 잘 살 수 있겠다. 이게 아니었어요. 이걸 반대하는 집단이 많이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에 1995년에 아까 전에 사진에 보셨었던, 이스라엘의 라빈총리는 암살당하게 돼요. 이스라엘의 구호파에서 ”왜 우리가 너희들한테 저 아랍 사람들한테 땅을 줘야 되지? 이런 협정을 체결한 총리는 넌 잘못이야 “ 하면서 굉장히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요. 그들이 라빈총리를 암살하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극우파 정부가 등장하기 시작해요.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무장투쟁 안 하고, 땅을 받을 수 있으면 너넨 좋은 것만 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협정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원래 우리 땅이었는데 우리가 그걸 다 찾아와야지 왜 이런 식으로 받아와야 되냐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고요. 그리고 그걸 대표하는 집단 중에 하나가 뭐였냐면, 하마스예요.
하마스의 무력투쟁
하마스는 제2차 인티파타 운동 당시에 그때 등장한 무력투쟁단체로 보시면 됩니다. 이 하마스에서는 오슬로 협정에 굉장히 반대했고요. 무력투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런 단체가 하마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하마스 느 이스라엘에서 이미 테러 집단으로 규정을 해놓은 집단이고요. 이 하마스를 창설한 아메드 야신. 자 이분은 2004년에 가자지구 공습으로 사망을 하시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습을 하면서 거기에 계셨던 야신이 사망하게 됩니다. 이 아메드 야신이라는 분 자체가 굉장히 나이도 많으셨고요. 노인이고 휠체어 끌고 다니시는 이런 분이신데, 그분을 그렇게까지 죽일 이유까지 있었느냐 이런 의견이 분분해지면서, 하마스와 그 주변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심은 자꾸만 더 커지게 됩니다. 자 이제 그러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 피의 보복이 한동안 지속이 되는데요. 그 바람을 타고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2006년에 하마스가 승리를 하게 됩니다. 피에로는 자신들의 정치적인 정당으로 파타당을 가지고 있었어요. 여기는 살짝 온건파라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외교전으로 가야 돼 라고 주장하는 데가 파타당이고요. 우리는 계속 무력투쟁을 해야 돼. 하는 데가 하마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파타당이 계속해서 집권을 하다가 파타당을 누르고 이제 하마스가 2006년부터 집권당이 되게 된 거죠. 그래서 파타당은 가자지구에서는 더 이상 설 곳이 없기 때문에, 웨스트 뱅크로 다 넘어가 버립니다. 그리고 파타당은 하마스를 우린 너희를 인정 못 해라고 하는 이런 뉘앙스를 계속해서 풍기기 시작을 해요. 그럼 집권당이 된 하마스는 우리가 집권당인데 우리를 인정 못 한다니 하면서 서로 간에 불신과 반복이 커지게 되죠. 그래서 결국에는 정치적으로도 가자지구와 웨스트 뱅크는 분리되는 불운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하나로 뭉쳐서 싸워도 부족할 판에 이들이 분리가 되는 거죠. 이미 물리적으로도 가자와 웨스트 뱅크가 분리되어 있는데, 정치적으로도, 이념적으로도 살짝 식 분리가 되는 이런 불운한 사태에 놓이게 돼요. 이스라엘과 그러면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아랍인들은 계속해서 싸우느냐, 예 지금도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중이라고 보시면 돼요. 제가 최근에 일어난 유혈 충돌 가운데 유명한 것들 한 3가지만 간단히 말씀을 드릴 건데요. 2008년 12월에, 12월 말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2008년 12월 말부터 2009년 1월 사이에 유혈 충돌이 하나가 있었는데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갈등
이스라엘군이 하마스의 무장대원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사살을 합니다. 이에 대해서 보복을 하기 위해서 하마스에서는 로켓탄을 쏴요. 이스라엘에 로켓탄을 쏘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폭격을 하게 돼요. 그리고 이 폭격이라고 할 때에 로켓탄 하나와 로켓탄을 몇 개 쏘는 것과 그리고 이스라엘의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은 강도의 차이가 굉장히 큽니다. 거기에다 지상전까지 가지지구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이때 당시에 아랍 사람들의 피해는 굉장히 컸어요. 거의 사망자 수가 100배가 차이가 날 정도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13명 돌아가셨는데, 팔레스타인 아랍 사람들은 한 1400명 가까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을 합니다. 그리고 2012년에 또 하마스의 지도자가 이스라엘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걸 계기로 해서 다시 한번 전면전이 발생을 하고요. 그리고 가장 유명한 것 2014년에 굉장히 유명한 사건이 발생을 하는데요. 2014년 여름에 이스라엘 청년 남성 3명이 변사체로 발견이 됩니다. 이 사람들은 분명히 하마스에 의해서 살해당했을 거야.라고 이스라엘 정부에서 단정을 짓습니다. 이스라엘 정부에서 하마스 짓이야, 하마스에서 우리 청년을 살해했어.라고 얘기를 하면서 하마스에 대해서 복수를 하겠다.라고 하면서 하마스가 파놓은 땅굴이라던지, 하마스가 활동하는 지역에 대해서 전면적인 폭격을 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때 사건으로 2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을 하게 되고요. 하마스에서는 자신들이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을 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그것과는 상관없이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을 멈추지 않았던 일이 발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때 당시에 발생한 가자지구 피난민이 5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어요.
'세계 지리, 세계 역사, 분쟁 원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동지역의 인문적, 자연적 특성 (0) 2022.06.18 인종갈등의 사례 - 남아프리카 공화국 흑백 갈등 (0) 2022.06.18 유대인의 이주와 갈등, 유엔의 위임통치 (0) 2022.06.17 인종과 인종구분의 문제점 (0) 2022.06.17 박해받던 유대인들의 역사 (0) 2022.06.17